‘치매 정복’ 가능할까…알츠하이머 치료제 속속 개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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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3-08-31 11:18본문
“당신이 85세 이상 살기를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알츠하이머에 걸리거나 치매 걸린 노인을 돌보는 것이다.”
7년 전 미국 과학자 사무엘 코헨이 TED(기술·예술·감성 강연회)에 나와 한 말이다. 치매는 영혼이 멈춘 사람도, 곁에서 이를 지켜보며 돌봄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도 삶이 파괴되는 병이다. 알츠하이머가 발견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인간은 여전히 치매를 고치는 법을 찾지 못했다.
원인이 다양하고 신경 세포로 이뤄진 뇌의 특성상 완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치매를 유발하는 질병은 90여 가지로 알려져 있고 뇌 세포는 한 번 파괴되면 재생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던 치매 정복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치매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등장했다. 한국 치매 환자의 75.5%가 알츠하이머에 해당한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일본에서 최근 승인된 알츠하이머 신약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병을 완치시키는 약은 아니다. 그 대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춘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베타라는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세포를 파괴하고 뇌의 신경 연결망의 작동을 방해해 발생하는데 예방법이 없다. 치료제로 개발된 레켐비의 레카네맙 성분은 아밀로이드-베타가 쌓이지 않게 만들면서 병의 진행을 늦춘다.
레켐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둘째 치매 신약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정복을 목표로 했던 첫째 신약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안정성이 문제였다. 레켐비를 개발한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2021년 FDA에 신속 승인을 받았지만 효능과 안정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FDA의 정식 승인을 받지 못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실패를 보완해 개발한 둘째 신약이 바로 레켐비다. 7월 6일 FDA가 레켐비를 최종 승인했는데 올해 초 임상 2상 결과를 바탕으로 신속 승인된 지 반년 만이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리처드 오클리 알츠하이머협회 연구부국장은 FDA가 레켐비를 정식으로 승인한 것과 관련해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종말의 시작점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레켐비는 3상 임상 시험에서 18개월간 2주에 한 번 정맥 주사로 약물을 투여받은 환자들이 위약(가짜 약)을 투여받은 대조군에 비해 인지 능력 저하가 27% 늦게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약 5개월 증세가 늦춰진 것이다. 임상 대상은 1795명이었다.
물론 한계도 존재한다. 비싼 약값과 초기 단계 치매에만 한정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약값은 연간 2만6500달러(약 3553만원)로 책정됐다. 일본은 미국보다 저렴한 연간 300만 엔(약 2750만원) 이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은 10월부터 레켐비를 의료 현장에 도입할 예정이다. 닛케이는 “고액 의료에 월 상한을 두는 요양비 제도가 있어 환자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연내 레켐비 승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에자이는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초기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 인지 장애와 초기 치매 치료 목적으로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에자이가 레켐비의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것은 일본과 중국을 제외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최초다.
셋째 신약도 탄생할 조짐이 보인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은 최근 임상 3상에 성공했다. 일라이릴리가 발표한 임상 3상 시험 데이터에 따르면 1736명을 대상으로 76주간 실험한 결과 도나네맙 투여 환자에게 통합 알츠하이머병 평가 척도(iADRS)에서 능력 저하를 35% 늦췄다. 특히 경증 참가자 인지력 저하를 60%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동원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은 “레카네맙과 도마네맙의 임상 결과로 아밀로이드가 뇌 손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 또한 치매 치료의 큰 성과”라며 “미국에서는 레카네맙 투약 환자들이 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환자의 치료 데이터를 공유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이처럼 환자 데이터 관리가 가능해지면 장기 추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도 치매 정복을 위한 신약 개발에 나섰다. 아리바이오는 지난해 11월 경구용 치매 치료제 후보 물질 ‘AR1001’의 미국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했다. 올해 6월 식약처에 글로벌 임상 3상 계획을 신청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리바이오는 영국 정부의 연구소와 케임브리지대 바이오연구소 등을 거친 정재준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임상 3상을 진행하기 위해 데이비드 그릴스 워싱턴대 신경과 교수가 임상총괄책임 임원으로 합류했다. 그릴스 교수는 노스웨스트 신경의학 임상연구센터 책임자로 22년 동안 활동해 온 세계적인 신경과 의사이자 치매 임상의학의 리더다. 아리바이오 AR1001 임상 2상을 비롯해 아두카누맙·도나네맙·레켐비 등 글로벌 파이프라인의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아리바이오의 신약은 그동안 개발된 정맥 주사가 아니라 먹는 약이다. 아리바이오 관계자는 “정맥 주사는 치매 환자가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며 “경구용 약은 정맥 주사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복용 편의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리바이오의 AR1001이 각국에서 승인되면 세계 최초의 경구용 치매 치료제 타이틀을 얻는다.
아리바이오가 개발하고 있는 AR1001은 신경 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를 활성화하고 신경 세포 사멸 억제 및 생성을 촉진하는 약물이다. 자가 포식(autophagy) 활성화에 의한 독성 단백질(타우 단백질)을 제거하고 뇌로 향하는 혈류의 양을 늘리며 시냅스의 가소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 같은 다중 기전 효과는 임상 2상에서 증명됐는데, 특히 타우 단백질은 투약 52주 후 시작점 대비 25% 이상 감소했다.
치매는 전 세계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제 알츠하이머협회는 2020년 기준 5500만 명 수준인 알츠하이머 환자가 2030년 7800만 명, 2050년에는 다시 2배에 가까운 1억39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고령화가 원인이다.
치매 환자가 600만 명에 달하는 일본은 ‘치매 국가 프로젝트’에 나섰다. 치매기본법을 통과시키고 총리가 주재하는 치매대책추진본부를 출범시켜 나라 차원에서 치매를 적극 관리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치매 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1년 전국 치매 환자는 97만2436명이었다. 노인 인구의 유병률을 보면 65세 이상 인구 중 10명 중 1명은 치매에 걸렸다.
사회적 비용도 증가 추세다. 2021년 치매 환자 연간 총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18조7000억원으로 GDP의 약 0.9%를 차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2070년 약 194조2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운동과 꾸준한 사회생활이 필수라고 조언한다. 양동원 교수는 “운동은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와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생활 역시 중요하”며 “책을 읽거나 머리를 쓰는 인지 훈련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7년 전 미국 과학자 사무엘 코헨이 TED(기술·예술·감성 강연회)에 나와 한 말이다. 치매는 영혼이 멈춘 사람도, 곁에서 이를 지켜보며 돌봄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도 삶이 파괴되는 병이다. 알츠하이머가 발견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인간은 여전히 치매를 고치는 법을 찾지 못했다.
원인이 다양하고 신경 세포로 이뤄진 뇌의 특성상 완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치매를 유발하는 질병은 90여 가지로 알려져 있고 뇌 세포는 한 번 파괴되면 재생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던 치매 정복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치매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등장했다. 한국 치매 환자의 75.5%가 알츠하이머에 해당한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일본에서 최근 승인된 알츠하이머 신약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병을 완치시키는 약은 아니다. 그 대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춘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베타라는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세포를 파괴하고 뇌의 신경 연결망의 작동을 방해해 발생하는데 예방법이 없다. 치료제로 개발된 레켐비의 레카네맙 성분은 아밀로이드-베타가 쌓이지 않게 만들면서 병의 진행을 늦춘다.
레켐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둘째 치매 신약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정복을 목표로 했던 첫째 신약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안정성이 문제였다. 레켐비를 개발한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2021년 FDA에 신속 승인을 받았지만 효능과 안정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FDA의 정식 승인을 받지 못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실패를 보완해 개발한 둘째 신약이 바로 레켐비다. 7월 6일 FDA가 레켐비를 최종 승인했는데 올해 초 임상 2상 결과를 바탕으로 신속 승인된 지 반년 만이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리처드 오클리 알츠하이머협회 연구부국장은 FDA가 레켐비를 정식으로 승인한 것과 관련해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종말의 시작점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레켐비는 3상 임상 시험에서 18개월간 2주에 한 번 정맥 주사로 약물을 투여받은 환자들이 위약(가짜 약)을 투여받은 대조군에 비해 인지 능력 저하가 27% 늦게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약 5개월 증세가 늦춰진 것이다. 임상 대상은 1795명이었다.
물론 한계도 존재한다. 비싼 약값과 초기 단계 치매에만 한정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약값은 연간 2만6500달러(약 3553만원)로 책정됐다. 일본은 미국보다 저렴한 연간 300만 엔(약 2750만원) 이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은 10월부터 레켐비를 의료 현장에 도입할 예정이다. 닛케이는 “고액 의료에 월 상한을 두는 요양비 제도가 있어 환자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연내 레켐비 승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에자이는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초기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 인지 장애와 초기 치매 치료 목적으로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에자이가 레켐비의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것은 일본과 중국을 제외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최초다.
셋째 신약도 탄생할 조짐이 보인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은 최근 임상 3상에 성공했다. 일라이릴리가 발표한 임상 3상 시험 데이터에 따르면 1736명을 대상으로 76주간 실험한 결과 도나네맙 투여 환자에게 통합 알츠하이머병 평가 척도(iADRS)에서 능력 저하를 35% 늦췄다. 특히 경증 참가자 인지력 저하를 60%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동원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은 “레카네맙과 도마네맙의 임상 결과로 아밀로이드가 뇌 손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 또한 치매 치료의 큰 성과”라며 “미국에서는 레카네맙 투약 환자들이 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환자의 치료 데이터를 공유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이처럼 환자 데이터 관리가 가능해지면 장기 추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도 치매 정복을 위한 신약 개발에 나섰다. 아리바이오는 지난해 11월 경구용 치매 치료제 후보 물질 ‘AR1001’의 미국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했다. 올해 6월 식약처에 글로벌 임상 3상 계획을 신청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리바이오는 영국 정부의 연구소와 케임브리지대 바이오연구소 등을 거친 정재준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임상 3상을 진행하기 위해 데이비드 그릴스 워싱턴대 신경과 교수가 임상총괄책임 임원으로 합류했다. 그릴스 교수는 노스웨스트 신경의학 임상연구센터 책임자로 22년 동안 활동해 온 세계적인 신경과 의사이자 치매 임상의학의 리더다. 아리바이오 AR1001 임상 2상을 비롯해 아두카누맙·도나네맙·레켐비 등 글로벌 파이프라인의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아리바이오의 신약은 그동안 개발된 정맥 주사가 아니라 먹는 약이다. 아리바이오 관계자는 “정맥 주사는 치매 환자가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며 “경구용 약은 정맥 주사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복용 편의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리바이오의 AR1001이 각국에서 승인되면 세계 최초의 경구용 치매 치료제 타이틀을 얻는다.
아리바이오가 개발하고 있는 AR1001은 신경 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를 활성화하고 신경 세포 사멸 억제 및 생성을 촉진하는 약물이다. 자가 포식(autophagy) 활성화에 의한 독성 단백질(타우 단백질)을 제거하고 뇌로 향하는 혈류의 양을 늘리며 시냅스의 가소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 같은 다중 기전 효과는 임상 2상에서 증명됐는데, 특히 타우 단백질은 투약 52주 후 시작점 대비 25% 이상 감소했다.
치매는 전 세계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제 알츠하이머협회는 2020년 기준 5500만 명 수준인 알츠하이머 환자가 2030년 7800만 명, 2050년에는 다시 2배에 가까운 1억39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고령화가 원인이다.
치매 환자가 600만 명에 달하는 일본은 ‘치매 국가 프로젝트’에 나섰다. 치매기본법을 통과시키고 총리가 주재하는 치매대책추진본부를 출범시켜 나라 차원에서 치매를 적극 관리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치매 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1년 전국 치매 환자는 97만2436명이었다. 노인 인구의 유병률을 보면 65세 이상 인구 중 10명 중 1명은 치매에 걸렸다.
사회적 비용도 증가 추세다. 2021년 치매 환자 연간 총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18조7000억원으로 GDP의 약 0.9%를 차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2070년 약 194조2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운동과 꾸준한 사회생활이 필수라고 조언한다. 양동원 교수는 “운동은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와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생활 역시 중요하”며 “책을 읽거나 머리를 쓰는 인지 훈련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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