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연구하다 휴대용 치매 치료기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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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평행복의집 작성일 14-08-08 11:14본문
뇌과학을 연구하던 공학도가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확인하고는 이를 응용해 치매를 치료하는 휴대용 기기를 직접 만들고 나섰다. 윤경식 와이브레인 대표 얘기다.
윤경식 대표는 2002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카이스트는 세계 최초로 뇌공학과를 꾸렸다.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윤 대표는 생물학에서 가장 연구할거리가 많은 영역인 뇌를 다루면서 공학적 지식도 필요한 뇌공학에 사로잡혔다. 1년 뒤 전공을 결정할 때 주저하지 않고 뇌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이때부터 석사·박사 과정을 밟고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칼텍)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도 윤 대표는 뇌공학 한 우물만 팠다.
“대학원 다닐 때 뇌파를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내고 질병에 걸린 뇌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를 많이 연구했어요. 카이스트 근처에 한 요양원이 있거든요. 치매 노인 분이 많은 곳인데, 2년 동안 여길 자주 오가며 치매 환자 뇌를 검사하고 데이터를 모아 어떻게 치매를 효율적으로 진단할지 연구했어요.”
윤 대표는 자연스레 치매 치료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의 연구가 치매 환자에게 피부에 닿는 도움을 줄 수 없는 점이 안타까웠다.
“뇌파 연구하고 치매 진단하는 일이 중요하긴 한데 이게 노인분들께 직접 도움을 줄 수가 없잖아요. 측정 기기 쓰고 하는 걸 힘들어하시는데 직접 도움은 못드리고 괴롭히기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팠어요.”
윤 대표는 미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칼텍에서 뇌에 전기 자극을 줘서 뇌 자체를 직접 조절하는 ‘뉴로 모듈레이션’ 분야를 연구했다.
뇌에 전기 자극을 줘 뇌 질환을 치료한다는 얘기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뇌 바깥에 전극을 달면 전기가 2cm까지만 들어갔기 때문에 실용성이 떨어졌다. 윤 대표는 피부 바깥에서 전기를 쏴 뇌 깊숙한 부분을 적확하게 자극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네이처’에도 실렸다. 윤 대표는 이 기술을 치매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카이스트 출신 동료를 모아 헬스케어 스타트업 와이브레인을 직접 꾸렸다.
▲기존에 뇌에 직접 전극을 꽂아 자극을 줬던 방식(왼쪽)과 와이브레인이 개발한 뉴런 네트워크를 통한 자극 전달 방식 비교 (자료 : 와이브레인)
와이브레인은 간편하게 머리에 쓰기만 해도 뇌에 전기 자극을 줘 치매를 치료하는 휴대용 의료기기 ‘와이밴드(Yband)’를 개발 중이다. 윤경식 대표의 연구 결과를 치매 치료에 응용한 것이다. 와이밴드는 지난해 미국에서 가벼운 인지장애(MCI) 환자와 치매(알츠하이머병) 환자 100여명을 대상으로 초기 임상실험을 거쳤다. 윤경식 대표는 실험 결과 인지 기능이 10~20% 정도 좋아졌고,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봐도 문제가 있던 뇌 부위가 다시 활성화되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와이브레인이 개발 중인 휴대용 헬스케어 기기 ‘와이밴드’
뇌는 신경세포 덩어리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 뉴런은 시냅스라는 통로를 통해 서로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다. 사람이 똑같은 일을 반복할수록 쉽게 해낼 수 있는 이유는 그 일을 하는데 쓰이는 뉴런 사이 연결망이 더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뉴런이 신호를 교환하는 네트워크 가운데 몇가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쾌락을 느끼게 하는 보상중추로 통하는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또 하나가 와이브레인이 치매 치료에 활용하는 통로다. 와이밴드는 이 뉴런 네트워크에 전기를 흘려보내 전두엽 깊숙한 곳을 자극한다.
전두엽은 사람의 행동, 기억, 학습, 감정 같은 일을 담당하는 부위다. 치매는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다. 와이밴드는 외부에서 전기자극을 흘려보내 손상된 신경 회로를 활성화해 치매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료한다.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그대로 응용한 것이다.
▲일반인의 뇌(왼쪽)와 치매 환자의 뇌(자료 : 와이브레인)
머리에 칼을 대지 않는다지만 머리 속에 전기를 흘려보낸다니, 위험하지는 않을까 의심부터 든다. 윤경식 대표는 안전하다고 자신했다. 와이밴드가 쏘는 전류가 휴대폰에서 나오는 전류의 7분의1 정도인 0.3mW/kg에 불과하고, 정해둔 부위에 정확히 착용하지 않으면 기기가 아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기기 오남용을 막기 위해 하루에 30분까지 딱 한번씩만 쓸 수 있도록 해뒀다. 한번 사용하면 기기가 잠겨 다음날에야 쓸 수 있다. 직접 와이밴드를 써보니 피부만 조금 따끔거렸을 뿐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와이밴드가 모든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알려진 뇌 속 회로를 통해서만 전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뇌에 직접 전극을 꽂는 수술보다 활용도가 제한된다. 윤경식 대표는 치매 외에 다른 분야에도 와이밴드를 활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흘려보내는 전류량이 극히 적기 때문에 오랫동안 꾸준히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점도 한계다. 윤 대표는 “갑자기 큰 충격을 주는 게 아니라 3개월 이상 적은 전류를 꾸준히 흘려보내 뇌세포의 연결성을 조금씩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원래 자주 쓰는 뇌세포끼리 연결망이 강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치매를 치료한다는 뜻이다.
한국에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많지 않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연구개발비도 비싸기 때문이다. 투자를 받기에도 미국 실리콘밸리보다 불리하다. 윤경식 대표는 왜 굳이 한국에서 헬스케어 기기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을까. 그는 “한국은 의료기기를 만들기 좋은 환경”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은 중소기업 제조업 기반이 잘 갖춰져 있어 매우 정밀한 의료기기를 만들기에 좋아요. 미국에서 개발한다고 해도 제조는 중국에서 하거든요. 중국은 질적으로 못 미덥죠. 또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 5곳이 한 도시에 모여 있는 곳은 서울이 유일해요. 병원과 임상실험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조건이죠.”
와이브레인은 삼성서울병원과 손잡고 가벼운 인지장애와 치매 환자 200명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 실험 결과는 올 연말께 나올 예정이다. 윤경식 대표는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뛰고 있다고 말했다. 와이브레인은 지난해 2월 솔본인베스트먼트에서 7억원을 투자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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